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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정치,사회 동향 (출처: KOTRA 해외자료) 본문
가. 역사 요약
근대 이전
문자로 기록된 미얀마의 고대역사는 매우 빈약하지만 미얀마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 전후로 추정되고 있다. 불교 전통 및 설화에 따르면 부처님이 재세 시 미얀마를 다녀갔으며, 부처님의 머리카락을 받아와 보관했다고 한다. 미얀마가 속한 동남아시아는 중국권 및 인도권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중국과 가까운 베트남의 경우 중국의 영향을, 인도와 가까운 미얀마의 경우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미얀마인은 당시 인도에 속했던 티벳계 인종으로 알려져 있다.
흩어져 살던 미얀마인이 최초로 통일왕국을 수립한 것은 1044년으로, 아나와타 왕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미얀마 북서부 지역의 바간(Bagan)을 중심으로 왕국을 건설하면서부터다. 이 왕조는 불교를 숭상해 바간 지역에 대규모 불사를 일으켜 오늘날 앙코르와트에 버금가는 대규모 불교유적을 남겨놓았으며, 오늘날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미얀마 최대의 관광상품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왕조는 불사로 인한 재정압박으로 1287년 몽고의 쿠빌라이 칸에게 멸망 당했다. 통일왕국이 무너지면서 약 300년간의 혼란기를 마무리한 것은 따웅구(Taung Oo) 왕조의 바잉나잉 왕이었다. 그는 수도를 양곤 인근의 바고 지역으로 옮기고 국력의 배양에 힘쓰는 동시에 1564년과 1569년 태국을 침공, 당시 수도인 아유타야(Ayuthaya)를 점령, 약탈하기도 해 오늘날까지 미얀마와 태국은 서로를 경계하는 역사적 배경이 됐다.
영국 식민지 시대
미얀마의 근대사는 여타 아시아 제국과 마찬가지로 서세동점에 따른 서구열강의 침략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를 식민지화한 영국은 점차 동쪽으로 세력을 확산하는데, 미얀마 남부의 대규모 곡창지대를 주목하게 된다. 결국 영국은 1824년, 1852년, 1885년 세 차례의 전쟁을 거쳐 미얀마를 식민지로 지배했는데, 특이한 것은 이때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아니라 인도의 한 부속지로 편입시킨 것이다. 영국은 인도인을 미얀마에 이주시켜 식민지 하급관리, 상업 등에 종사하게 했다. 오늘날 미얀마에서 인도계 미얀마인을 볼 수 있는데, 2차 대전 후 상당수 인도인이 인도로 복귀했으나 인도계 무슬림 등이 일부 남아 50만 명 정도가 미얀마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식민시대 미얀마의 경제활동은 농업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이 미얀마를 쌀 수출 식민기지로 육성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얀마 농업은 종전 왕조시대의 자급자족적 농업에서 수출산업의 의미를 가지게 됐다. 1830년대 미얀마에 상륙한 영국 상인들은 미얀마의 풍부한 쌀에 주목, 수출독점권을 확보해 미얀마 남부의 라카인주(Rakhine State)를 거점으로 영국의 공산품과 미얀마산 쌀을 교환해 인도의 마드라스 항구로 수출했다.
1865년 이전 미얀마 북부는 여전히 만달레이에 수도를 둔 미얀마 왕조가 통치했으며 인구 구성도 북부가 360만 명, 남부가 150만 명으로 북부가 미얀마의 중심적 역할을 했다. 그러다 본격적인 쌀 중심의 농업생산이 영국의 관심사가 되면서 풍부한 수량과 비옥한 남부 이라와디 델타(Irrawaddy Delta)지역이 본격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인구 증가와 함께 미얀마 남부로 인구의 대이동이 일어났다. 1891년 미얀마 인구구성은 북부 340만 명, 남부 470만 명으로 역전돼 이와 같은 인구 비율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라와디 델타지역은 미얀마 농업의 핵심으로 미얀마의 브레드 바스켓(Bread Basket) 역할을 하고 있다.
미얀마의 쌀 수출은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함께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이후 중동 및 아시아,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로 수출됐다. 1901년 벼 식부면적은 1000만 에이커, 쌀 수출량은 220만 톤, 1941년에는 식부면적 1252만 에이커, 쌀 수출이 279만 톤을 기록했다. 식민시대 미얀마산 쌀 수출은 200만 톤 이상을 유지했는데, 1934년에는 최고치인 337만 톤을 수출했다. 이때 일반 농민들은 헐값에 벼를 중간상에게 넘기게 돼 어려움을 겪게 됐으며, 상당수 농민들이 농토를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이 시기 영국인이 쌀의 유통 및 수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들은 수출에 편리한 항구에 대규모 도정공장을 설립하고, 중간상을 통해 사들인 벼를 도정, 해외로 직접 수출했다. 중간상은 브로커나 상인들로서 영국인들의 의뢰를 받아 산지 농민 또는 지주들로부터 벼를 구매, 항구까지 운송하는 책임을 맡았으며, 영국인들로부터 커미션을 받는 것 외에 매매차익까지 거두었다. 영국인들은 벼의 운송을 위해 이라와디 델타지역을 중심으로 다수의 소규모 운하를 건설했는데 이들은 오늘까지도 주요 운송수단이 되고 있다. 식량수송을 위해 1877년 양곤과 삐(Pyay) 사이에 미얀마 최초의 철도가 개설됐으며, 이후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철도가 속속 건설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미얀마는 다민족국가이다. 영국 식민지 정부는 미얀마인 중 버마인보다 주로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을 하급관리, 군인 등으로 등용하고 기독교를 전파했다. 그 결과 현재도 버마인이 대부분 불교도인데 반해 소수민족은 기독교인이 많다. 식민지 정부는 통치기술의 하나로 민족 간 갈등을 이용한 측면이 있다고 하며, 미얀마 독립 시 단일국가체제가 아닌 연방국가체제가 된 것은 이와 같은 민족적 요소가 고려된 결과이다.
고립적 사회주의 시대
2차 대전 후 1945년 미얀마는 아웅산 장군을 중심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으나, 정부 수립 와중에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이 암살되는 등 정치적 혼란은 계속됐다. 1948년 미얀마 최초의 민간정부가 수립됐으나 혼란은 계속됐으며, 독립투쟁의 시기에 형성된 군부세력이 민간정치세력을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미얀마의 통치 엘리트로 등장할 소지를 제공하게 된다. 결국 1962년 3월 군 총사령관인 네윈 장군을 중심으로 쿠데타가 성공해 미얀마는 군사통치 시대를 열게 됐다. 네윈은 당시 동서냉전의 시대에서 사회주의와 불교사상에 입각해 이른바 ‘버마식 사회주의’를 도입하고 사유재산제도의 폐지, 계획경제의 도입은 물론 대외적으로 폐쇄적, 자급자족적 고립경제체제를 채택했는데, 이러한 네윈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한 때 동남아의 부국이었던 미얀마를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시킨 결정적 요인이 된다.
네윈은 버마식 사회주의(Burmese way to Socialism)를 기치로 토지, 기업의 국유화를 포함한 계획경제체제로 돌입했고, 농민 및 노동자를 내세우며 농업에 가장 큰 역점을 두게 됐다. 사회주의 이념의 추구에 따라 모든 토지는 국유화됐고, 따라서 생산주체인 농민에게는 토지의 경작권만 주어졌다. 작물 선택, 재배 등 수확 전 활동과 유통, 수출 등 일체의 수확 후 활동은 정부의 계획에 따라 시행됐다. 정부는 농가의 자가소비분을 제외한 벼를 전량 독점 수매하고 이를 도시민 및 쌀 부족지역을 포함한 전국에 배급했으며 대부분의 시장기능은 정지됐다. 1963년 군사정부가 발표한 포고령에 따르면 벼를 포함한 42개 농작물의 수매, 저장, 판매, 도정과 쌀 및 쌀 관련제품의 배분, 수출은 정부 및 정부기업만이 수행할 수 있다고 해 농업의 수확 후 활동에 있어 민간부문을 완전히 배제시켰다.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1988년 양곤 대학생을 중심으로 민주화시위가 일어나 결국 네윈이 퇴진하고 딴쉐를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신군부는 1990년 5월 총선거를 실시했으나, 아웅산 장군의 딸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가 총 485석 중 392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군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1990년 7월부터 2010년 11월 13일까지 아웅산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과 계엄령 선포로 대응했다. NLD는 지속적으로 군사정권에 대해 1990년 5월 총선결과의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왜곡된 시장경제 체제
1988년 집권한 신군부는 종전의 고립적, 폐쇄적 대외경제제도를 대폭 정리, 대외교역 및 투자 활성화를 국가의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1988년 외국인투자법을 도입, 외국인투자 활성화에 나섰다. 권력의 최대 기반인 농민의 기본적 생활 보장을 위해 쌀과 식용유의 공급안정에 최대의 역점을 두었고, 부족한 외화 확보를 위해 천연가스를 집중 개발했는데 해상 천연가스는 거의 외국인투자자에 의해 개발됐다. 하지만, 미얀마 경제체제는 군부 아래에 시장경제체제와 사회주의의 요소가 혼합된 형태를 띄고 있고, 현재도 이러한 형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형식상 민간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고 있으나 정부의 직접적인 간섭과 규제를 벗어나지 못하며, 필요에 따라 정부는 초법적으로 수시로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그 결과 미얀마는 ‘법에 의한 지배’ 보다는 ‘권력에 의한 지배’가 일상화됐고, 이는 외국인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1962년 사회주의 도입과 더불어 미얀마의 경제발전은 정지 또는 후퇴의 과정을 겪었다. 미얀마는 ‘황금의 나라’라는 별칭과 함께 ‘시간이 멈춘 나라’라는 별칭이 있는데, 미얀마의 경제시계는 일부 영역을 제외할 경우 제조업, 금융업, 농업, 광업, 기타 서비스업 등 대부분 산업이 1962년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미얀마의 산업이 어느 수준에 있는가를 알아보려면 한국의 1960년대를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1960년대 초를 기준으로 한국은 개방경제를, 미얀마는 폐쇄경제를 선택했고 그 선택이 오늘날의 차이를 만들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 이전에는 미얀마가 한국보다 훨씬 더 잘 사는 나라였다.
개방적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
1962년부터 지속되던 군부통치가 마무리되고 2011년 3월 30일, 테인 세인 대통령이 미얀마 민선 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정부 출범 시 국내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테인 세인 대통령은 수치여사 감금 해제(2010.11.13.) 및 해외활동 허용, 반체제인사 블랙리스트 해제, 언론 검열 철폐, 시장환율 도입, 수출입 인허가 제도 폐지 등 개혁 및 개방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2012년 7월 1일 대통령의 개혁 및 개방정책에 반대하던 친군부 성향의 아웅 민트 우 부통령의 사임은 정부 내 반개혁파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계기가 됐으며, 이후 개혁성향 인사의 대거 등용을 통해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또한, 테인 세인 대통령 정부는 전력난 해소, 도로망 개선, 국민주택 확대, 신규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확대, 공무원 월급 인상 등 국민들의 체감에 직접적인 정책들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2011년 테인 세인 대통령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일부 반개혁적 친군부 성향의 인사가 사임한 바 있으나, 군부가 여전히 헌법에 의거해 국방부, 내무부(경찰관할), 국경부 장관의 지명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신정부의 국방부에 대한 감사 권한이 없어 군부의 활동에 대해 직접적인 관여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군부는 산하의 MEC(Myanmar Economic Corporation)와 UMEHL(Union of Myanmar Economic Holdings Limited)라는 2개의 지주회사를 통해 자원개발, 농수산, 건설, 무역 등 미얀마 경제의 최소 60% 이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종래에 비해 다소 약화됐다고는 해도 여전히 정치·경제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아울러, 국방비는 미얀마에서 가장 큰 정부지출 항목 중의 하나다. 미얀마의 육해공 병력은 4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불교승려의 경우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약 40만 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테라바다 불교 특성상 세속적인 관심보다 개인 수도에 역점을 두기 때문에 정권에 커다란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2007년 9월의 시위사태에서 젊은 승려들이 대규모로 시위에 참가한 점을 볼 때 언제든 이러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과거 군부뿐만 아니라 미얀마 정부 역시 불교 및 승려에 대해 많은 배려를 하고 있으며, 군부 실세들이 직접 고승들을 찾아 인사를 하고 선물을 전달하는 광경을 수시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불교승려들이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환경보호, 종교갈등, 소수민족 보호 등과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발언 및 참여를 확대하는 추세이다.
과거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에 대해서는 군사정부가 예방조치로 민주화 운동의 중심인 양곤 대학 자체를 수년간 폐교한 적이 있으며, 이후 도심에서 떨어진 곳으로 학교를 이전해 학생중심의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차단한 바 있다. 그러나 테인 세인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에는 계속되는 개혁과 개방조치로 인해 정부의 정책에 대한 이들의 반감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취업 및 창업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1988년 시위를 주도했던 반정부 인사들도 테인 세인 대통령 정부의 대대적인 정치범 석방 및 블랙리스트 제외로 대부분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또한 반정부 시위보다는 노동환경 개선, 환경보호, 소수민족 보호 등과 사회적인 문제 개선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국민이 염원하던 NLD 당의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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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에 이뤄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여사를 대표로 했던 NLD당이 당시 테인세인 대통령이 속해있던 USDP당으로부터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당이 됐으며, 2016년 3월에 진행된 대통령 선거에서도 NLD당의 틴쩌 대통령이 취임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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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D당은 대통령 선거 전까지 아웅산 수치여사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수 있도록 관련 수정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으나 결국 통과되지 못했고, 아웅산 수치여사는 국가자문역이라는 직책을 부여 받고 국가정치에 깊이 관여를 하게 됐다. 2016년 중반까지 국정 운영시 세수정책, 교육정책, 노동정책, 투자정책 등에 관련한 전반적인 개혁정책을 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기존 정권의 잔재를 처리하는 중으로 크게 정책 변경이 없었으며, 임명된 장관과 차관이 행정실무를 담당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빠른 변화의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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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이 서방세력의 전폭적 지지와 일본, 중국 등의 지원, 2016년 말 외국인과 현지인 통합투자법의 제정, 신규 프로젝트 창출, 노동법 및 기타법률 제정 등의 움직임이 있어 국민들이 희망하는 정치가 이루어질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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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외국인 투자는 다소 주춤하였으나 신투자법 및 회사법 개정에 따른 2018년 부터 다시 외국인 투자 규모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나. 정치 체제 및 정국 현황
행정조직
미얀마의 정치체계는 대통령 중심제이며, 2008년 5월 국민투표로 채택된 신헌법에 따라 2010년 11월 7일 총선이 실시돼 2011년 1월 31일 의회가 구성됐다. 2011년 2월 4일에 개최된 연방 상하원 합동의회에서는 상·하원 및 군부에 의해 각각 추천된 3명의 부통령 중 하원 추천 부통령인 테인 세인(Thein Sein) 총리를 임기 5년의 미얀마 민선 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부통령은 3명에서 2명으로 바뀌었으며, 군 출신 의원단이 추천한 냔툰(Nyan Tun)과 상원에서 추천한 사이 마욱 캄(Dr. Sai Mauk Kham)이 부통령이 됐다. 또한 기존의 군정 통치 기구인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는 2011년 3월 30일 테인 세인 대통령 정부 출범을 계기로 미얀마 정부에 모든 권한을 이양하고 해체됐다.
2016년 3월 15일, 연방 상하원 합동의회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지원하는 하원의 NLD당 띤 쩌(Htin Kyaw)가 미얀마 두 번째 민선 정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본 의회는 2015년 11월 8일 미얀마의 첫 민주선거라 할 수 있는 총선으로 뽑힌 의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민주주의 민족동맹당)이 전체 의석 664석에서 390석을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미얀마 국민들이 구성한 의회가 뽑은 띤 쩌 대통령은 미얀마의 첫 민주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부통령으로는 군부의 민 스웨(Myint Swe)와 상원의 NLD당 헨리 벤 띠우(Henry Van Thio)가 됐다.
2018년 3월 21일, 띤 쩌(Htin Kyaw) 대통령은 건강상 문제로 사임하였으며, 3월 28일, 미얀마 의회의 대통령 선출 투표에서 전 하원의장인 윈 민(Win Myint)이 새대통령으로 전체 636명의 의원 중 403명의 지지를 받아 미얀마 제 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테인 세인 대통령 정부 조직은 대통령실 6개 부처와 연방정부 36개 중앙부처로 구성돼 있었으나, 2016년 4월 신정부 출범과 함께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목표로 정부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2016년 7월 미얀마 정부 조직은 대통령실 2개 부처와 연방정부의 20개 중앙부처가 있었다. 2017년 11월에 정부사무소와 대외협력부 2개의 부처를 신설했으며, 현재 조직은 아래와 같다.
미얀마 연방정부 부처(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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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원: KOTRA 양곤 무역관
미얀마는 8개의 주요 민족에 14개주(7개 Division, 7개 State)로 구성돼 있다. 'District'는 미얀마 민족으로 구성된 일종의 직할 주이고 'State'는 주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일종의 자치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도 미얀마가 다민족, 연방국가라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지방정부의 장도 군장성급이 맡고 있다. 지방정부산하에는 'Township'이 있으며, 이는 한국의 기초자치 단체인 ‘군’ 이나 ‘구’라고 할 수 있다. 농촌의 경우 ‘Township’ 아래에 Village가 있다.
입법 및 사법 조직
사법부는 연방 최고법원, 각 주의 사법위원회(고등법원), 자치구법원, 지방법원, 또한 헌법재판소 등의 형식의 5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는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통상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입법부는 군부가 1988년 친위 쿠데타로 해산한 이후 다시 1990년 5월 의회구성을 위한 총선거를 실시했으나,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국민연맹(NLD)이 압승을 함에 따라 군부가 무효를 선언해 장기간 구성되지 못했었다. 이후 2003년 미국의 미얀마 경제제재조치 도입 이후에 미얀마 군부가 발표한 7단계 민주화 로드맵에 따라 2010년 총선거가 실시됐고, 그 결과 2011년 1월 31일 의회가 개원돼 입법부가 부활하게 됐다. 입법부는 하원(Pyithu Hluttaw, lower house), 상원(Amyotha Hluttaw, upper house), 연방의회 또는 상하원 합동 연방의회(Pydaungsu Hluttaw), 지방 의회(State and Region Hluttaw)로 나뉘어진다.
최근 정치 동향 및 전망
2015년 11월 8일, 미얀마에서는 전국적으로 총선이 실시됐다. 총선 결과, ‘민주화를 중심으로 한 경제 발전’ 슬로건과 함께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민주주의 민족동맹당)가 금번 선출직 491석 중 390석(상원 135석, 하원 255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이전 집권당 USDP(통합단결발전당)는 491석 중 41석(상원 11석, 하원 30석)만을 획득했다. 미얀마 헌법상 의석의 25%를 이미 할당받은 군부는 결과적으로 166석을 차지해 미얀마 의회는 총 664석(상원 224석, 하원 440석)으로 구성됐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당이 전체 의석의 59%를 차지하며 미얀마 정치의 주도세력이 됐다. 이를 반영하듯, 2016년 3월 15일 연방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지원하는 하원의 NLD당 띤 쩌(Htin Kyaw)가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군부의 민 스웨(Myint Swe)와 상원의 NLD당 헨리 벤 띠우(Henry Van Thio)가 부통령이 됐다.
2016년 3월 15일 대선 이전에 아웅산 수치 여사의 대통령 취임 가능성이 대두됐으나, 군부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참고로, 미얀마는 2008년 헌법 개정 때, 대통령 또는 부통령 후보의 자격요건으로 ‘배우자 또는 가족이 다른 국가 국적을 보유하고 있거나 다른 나라에서 후원금(지원금)을 받는 자일 경우’ 입후보 자격이 없는 것으로 규정한 바 있다. 때문에, 아웅산 수치 여사는 배우자(사망) 및 2명의 아들이 영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어 현재 헌법상으로는 대선에 참가할 수 없었다. 미얀마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연방 상하원 합동의회 재적의원의 75% 이상이 찬성해야 하나, 2008년 개정 시 군부가 재적의원의 25%를 지명하도록 규정해 사실상 군부의 동의가 없는 한 헌법 개정은 어렵다. 대선 전, NLD당이 외국 국적의 가족이 있는 사람에 대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는 특별법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군부의 반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때문에, 아웅산 수치 여사의 최측근인 띤 쩌가 대통령으로 취임해 아웅산 수치 여사의 실질적 친정체제가 구축됐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신정부 출범 초, 대통령실, 외교부, 교육부, 전력에너지부 총 4개의 정부 부처 장관으로 임명됐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부와 전력에너지부 장관은 각각 새로 임명됐으며 아웅산 수치 여사는 외교부와 대통령실의 장관이자 국가자문역(State Counsellor)만 역임하고 있다. 미얀마 신정부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띤 쩌(Htin Kyaw) 대통령과 함께 국제 관계, 국내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서 함께 주축이 돼 실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당분간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8년 3월 21일 띤 쩌 대통령이 건강상 문제로 사임함에 따라, 3월 28일 미얀마 의회의 대통령 선출 투표에서 전 하원의장인 윈 민(Win Myint)이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다. 미얀마 대외관계
2011년 4월 1일 미얀마의 테인 세인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UN 특사인 Tomas Ojea가 2011년 8월 21일부터 5일간 미얀마를 방문해 외교부 장관, 내무부 장관, 상. 하원 의장, 수치 여사 및 국회의원들과 면담을 갖고 정치범 석방 및 인권 문제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UN 특사는 2008년 8월과 2010년 2월, 2011년 8월 21일~25일 등 총 세 차례에 걸쳐 미얀마를 방문,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정부 주요 인사와 면담을 가졌다. 또한, 같은 해 9월 9일부터 5일간 미국 특사 데릭 미첼(Derek Mitchell)은 처음으로 미얀마에 방문해 외교부장관, 상하원 의장, 정보문화부 장관, 국경관리부 및 산업부 장관, 아웅산 수치 여사, 대통령 정치 고문 등과 면담을 갖고 향후 미얀마 민주주의 방향 및 미국-미얀마 간의 협력 등을 논의했다.
11월 30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미얀마 방문을 기점으로 미국-미얀마 관계가 급진전하며 미국의 경제제재조치 해제에 대한 기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얀마 정부는 미국이 요구한 정치범 석방, 보궐선거의 공정한 실시 등을 추진했다. 이어, 케빈 러드 호주 외무장관이 2012년 5월 9일 “미얀마에서 많은 진전이 이뤄졌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며 “이 같은 성취를 평가해 제재 리스트에서 대상자를 대폭 축소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융 및 관광 제재 대상자 명단에서 이전 정부에서 일했던 장관, 차관과 관광 관료가 삭제됐다. 다만 미얀마에 대한 무기금수조치는 그대로 유지했으며, 러드 장관은 야당의 정치참여, 새 노동법, 정치범 석방 등 긍정적 진전이 계속되길 바라며 공정한 선거, 인종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 등을 촉구했다.
미국은 미얀마 군사정권이 출범한 이후 양국 간 대사급 관계를 맺지 않고 있었으나,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2012년 5월 17일 데릭 미첼 미얀마 특사를 주 미얀마 대사로 공식 지명했으며, 미국 기업의 투자 및 수출입 금지 등 일부 제재조치를 완화하는 등 미얀마 개혁 촉진을 위한 유화정책을 발표했다. 미얀마 정부는 유엔 미얀마 대사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U Than Swe’를 주미국 미얀마대사로 공식 지명했다.
2012년 9월 25일 테인 세인 대통령은 미국을 공식 방문해 미국 국무장관과 26일 면담을 가졌다. 미국 정부는 9월 26일 미얀마 정부의 정치개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미얀마산 제품에 대한 추가적인 수입금지 조치를 완화하기로 했으며,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테인 세인 대통령과 만나 지속적인 개혁 조치를 인정한다는 의미로 미얀마와의 교역관계를 정상화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언급했다.
한편, 미얀마 정부는 자국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을 일주일 앞둔 9월 17일, 인도주의적 고려에 따라 외국인과 정치범을 포함한 514명의 수감자들에게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미얀마 테인 세인 대통령은 9월 27일, 취임 후 처음으로 뉴욕에서 열리는 제67차 유엔총회의 일반 토론에서 연설을 통해 미얀마는 구체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민주화의 과정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데에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요청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수치 여사는 지금까지 미얀마 정치개혁을 위해 서방이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2012년 9월 테인 세인 대통령의 방미에 앞서, 2012년 6월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클린턴 장관을 만나 미국의 수입금지 해제를 요청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2012년 7월의 미국 기업의 대미얀마 금융조치 및 일반투자에 대한 일반허가조치(General Licence)로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완화했고, 2013년 2월, Myanmar Economic Bank(MEB), Myanmar Investment and Commerce Bank(MICB), Ayeyarwady Bank, Asian Green Development Bank(AGD) 등 4개 미얀마 은행에 대한 미국기업의 금융거래를 승인했다.
세계은행 또한 2012년 6월 미얀마 경제수도 양곤에 사무소를 재개설했으며, 아시아개발은행도 같은 해 8월 사무소를 개설해 정치개혁 이후 국제사회 제재를 대폭 완화된 미얀마에 대한 국제금융기관 차원의 지원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제금융기관의 지원은 주로 인프라 확대, 일자리 창출, 농업 개선 등에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미얀마가 예상치 못한 속도로 빠르게 민주화 개혁 조치를 취하고 있는 가운데, 서방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호주가 미얀마 경제제재를 해제했다. 유럽연합(EU)은 미얀마 정부의 야당의 정치참여 허용, 노동법 제정, 정치범 석방 등 개혁 행보와 비례해 경제제재를 2013년 4월 30일까지 1년간 유보했으며, 2013년 4월 22일 EU 외무장관 간 회의를 가진 후, 2013년 5월 1일부터 완전 해제한다고 공식 발표했고, 2013년 6월 13일 특혜관세(GSP) 지위부여도 확정 발표했다.
2014년 11월 미얀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ESAN) 의장국으로서 아세안+ 정상회의를 개최해, 아세안국가뿐만 아니라,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 정상들이 수도 네피도에 모여 아세안 및 환태평양지역의 공동 경제협력 등에 대해 논의했다.
2015년 1월 27일, 미얀마 냔툰 대통령은 태국 부총리의 초청으로 태국을 방문했으며, The 3rd Myanmar-Thailand Joint High-Level Committee에 참석해, 그동안 진척이 더뎠던 다웨이 경제특구 개발 관련해 일본의 원조를 요청했다.
2015년 4월 21일, 테인 세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에 참석했다. 국회 하원의원장 HE. Thura Shwe Mann은 미국 및 중국을 직접 방문해, 미얀마의 외교관계 및 향후 미얀마 투자방향에 대해서 논의했으며, NLD당 대변인 아웅산 수치 여사 또한 2015년 6월에 중국을 방문해 미얀마 발전에 대해 논의했다.
2015년 11월, 미얀마 총선이 끝난 뒤 미국 측에서는 미얀마 총선이 민주적으로 마무리가 잘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 동안 미국의 SDN List에 포함된 대상 기업 및 사업자들 소유의 항구들에 대해, 6개월간 한시적으로 무역제재 조치를 완화했다.
이후, 2016년 5월 17일, 미국은 미얀마 경제제재 해제를 1년 유예하는 대신 금융거래 제한을 대폭 완화하고, 2015년 하반기에 한시적으로 완화했던 항구 이용 기한 제한을 없애고, 7개 국영기업을 제재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 제재 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주미얀마 미국대사는 자국의 대미얀마 경제제재 완화 조치에 대해 미얀마 신정부를 지지하는 “중요하고(Significant)”, “긍정적인(Positive)” 과정이라 강조하며 향후 미국의 추가 제재 해제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주미얀마 미국대사인 미첼 대사는 수치여사와의 면담에서 수소폭탄을 실험한 북한에 대해서, 미얀마와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를 권유했다. 2015년도 11월에는 북한과 미얀마 간의 무기 밀거래로 인해, 미국은 주미얀마 북한 전대사인 김석철 대사를 블랙리스트로 지정한 바 있다. 이는 미얀마에 대해서 민주화는 좋으나, 북한과의 무기거래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을 것을 알리는 경고로 해석된다. 북한은 블랙리스트 발표 후, 김석철 대사를 정호범 대사로 전격 교체했다.
2016년 9월 미국은 1989년 이후 중단됐던 GSP 수혜국 지정을 27년만에 재개했으며, 최저개발국으로 지정된 미얀마는 총 5,000여개 품목에 대한 무관세 수출 혜택을 받게 됐다. 이어 2016년 10월에 미국은 제재 관련 6개 행정명령을 폐지하면서 미국의 대미얀마 제재 공식 해제를 알려 공식적으로 제재조치는 종료됐다. 또한 재무부 SDN List에 등재돼 있었던 미얀마 기업 및 개인이 해제, 은행의 규제 등이 풀리면서 대미국 금융거래와 상품 수출입의 제한이 해제되었다.
EU는 총선을 ‘민주화로 가는 역사적 이정표’라고 평가했으며, 미얀마의 향후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지원할 예정으로 밝혔다. EU는 2013년도부터 ‘무기 및 내부 소요 진압장비 금수조치’를 제외하고 모두 해제돼 현재 EU-미얀마 양자투자협정(BIT) 체결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협정이 체결이 될 경우 섬유, 의류, 신발 등 노동집약적 사업에 대해 EU의 미얀마 투자진출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2015년 6월 방문 이후로 민주적 총선에 대해 축하하는 입장을 밝히며, 미얀마 최대 교역국으로서 지속적으로 미얀마에 투자할 것을 밝혔다. 미얀마 문민정부 출범 후 미얀마의 첫 양자회담 상대는 중국 외교부장이었으며,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과의 면담에서 양자 현안과 양국관계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2016년 8월에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이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과 미얀마 투자개발에 대한 논의를 했고, 중국 또한 동남아 진출을 위해 미얀마 투자에 힘쓸 것을 알렸다. 현재 중국은 미얀마에 댐 건설 및 동광산 개발 등에 나섰으나, 토지 수용 및 환경 훼손 우려로 해당 지역의 미얀마 주민들의 반발에 개발이 더딘 상황이다.
일본은 미얀마의 띨라와(Thilawa) 경제특구 개발에 미얀마 51%, 일본 49%의 지분을 투자해, 경제특구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총 개발면적인 2400ha 중 A구역 우선 개발지 405ha에 대한 1차 및 2차 분양은 완료됐다. B구역은 총 101ha 규모로 2017년 2월부터 개발을 시작하였으며, 2018년 8월 인프라 개발이 완공될 예정이다. 2014년 6월부터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기 시작하였으며, 총 17개 국가에서 94건, 약 14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일본은 미얀마와 태국 간 진행 중인 다웨이(Dawei) 경제특구 개발에도 참가, 한타와디 신공항 시공에도 참가할 것을 알려 미얀마의 인프라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 EU, 중국, 일본 뿐만 아니라 라오스, 싱가포르, 태국 등 동남아시아 주변국에서도 신정부 출범 이후 미얀마에 대한 투자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하고 있다.
(출처: KOTRA 해외국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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